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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설교모음

하용조 목사 설교, 찬양과 감사의 성벽 봉헌식, (느12장 27절에서 30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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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조 목사님의 2010년 12월 19일 온누리교회 주일 설교입니다.


 출처 : cgntv
 
서빙고 4부예배
* 시간 : 주일 오후 2:00
* 장소 : 온누리교회 서빙고성전 본당

신앙이란 변화하는 것입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다르고, 올해와 내년이 다릅니다.
외적으로 무너진 나의 성벽, 외적인 나의 습관, 언어, 사고방식 이런 것이 모두 변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부분도 변화돼야 합니다
.

 

영적인 눈으로 보는 내면의 세계

 

느헤미야서는 13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느헤미야서를 전체적으로 보면 큰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폐허된 예루살렘 성벽에 대한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가 눈물을 흘리면서 금식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느헤미야의 비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불탄 성문과 훼파된 성벽을 회복하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왕의 허락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불타버린 성벽을 재건하려고 할 때 반대자들과 공격자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기득권자들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지 못하도록 엄청난 음모를 꾸미고 공격했습니다. 
세 번째 사건은 결국 느헤미야가 공격해오는 모든 사람들을 믿음으로 물리치고 꿋꿋하게 서서 성벽 재건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벽을 재건하고 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는 영적 갈급함이 생겨서 학사 에스라를 초청해서 말씀을 듣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을 듣고 자기 자신을 보게 됩니다. 자기를 보게 되자 회개가 일어나기 시작하고, 금식하며 기도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네 번째 사건은 무너진 예루살렘 도성이 눈에 보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무너져있고 예루살렘 도시가 훼파되고 사람이 살 수 없는 무서운 곳이 된 것을 발견하고 모두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서 집도 짓고 사람이 살 수 있는 도시로 만들겠다고 나서게 됩니다.
다섯 번째 사건은 이 모든 일을 마치고 매우 기뻐서 감사와 찬양의 제사를 드리며 성벽 위에까지 올라가서 춤을 추는 봉헌식이 이뤄진 것입니다. 이 사건을 좀 더 영적으로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으면 가장 먼저 자신의 외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매우 잘난 줄 알았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보니까 술도 먹고 담배도 피우고 음란하게 사는 겉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겉모습부터 고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된 모습을 고치기 위해 노력할 때 끊임없이 사탄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속임수를 쓰고 거짓말을 하고 괴롭힙니다. 그때 사탄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이 바로 말씀입니다. 말씀을 듣고 나면 자신의 내면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영적인 눈을 떠서 미움, 질투, 시기, 분노, 상처가 자신을 괴롭혀왔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때 자신의 내면을 치유하기 시작합니다. 겉모양이 흐트러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내면의 상처입니다.

 

기뻐 춤추는 예배

 

오늘은 다섯 번째 사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예루살렘 성벽 봉헌식을 거행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찬양합니다(27절). 기뻐서 눈물이 나고 춤을 추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왜 교회에 와서 은혜를 못 받을까요? 일주일 동안 적당히 살다가 회개도 안하고 내면의 세계나 내 외면의 세계를 그냥 놔둔 채 교회 와서 앉아있으니까 말씀이 귀에 안 들어오고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굴에는 어두움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내면의 세계가 변하고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외적인 나쁜 습관들을 고치고 나면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게 됩니다. 그냥 웃음이 나옵니다. 아무 것도 없고, 배고프고, 입을 옷이 없고, 집이 없어도 좋습니다.
사랑하면 밤새워 사랑하는 사람과 얘기해도 마냥 좋듯이 하나님을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속에 들어와서 역사하고 나를 고치고 변화시키고 점점 하나님의 뜻에 가깝게 살게 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저는 대학 시절에 예수님을 만났는데, 그때 전도에 미쳤습니다. 서울역과 남산과 사직공원,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예수님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그 당시 집으로 가는 버스 안이 늘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초만원이었는데도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혹시 교회 다니세요? 예수 믿으세요?”라고 물으면서 전도했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좋았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분의 은혜가 정말 감사해서 헌 카드를 모아서 새 종이를 사서 안에 붙여서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이 성탄하신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신앙이란 변화하는 것입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다르고, 올해와 내년이 다릅니다. 외적으로 무너진 나의 성벽, 외적인 나의 습관, 언어, 사고방식 이런 것이 모두 변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 전쟁을 겪게 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수없이 공격을 받고 모함을 받습니다.

 

축제 같은 예배

 

성벽을 재건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사와 찬양의 성벽 봉헌식을 할 때 기뻐서 성벽 위로 올라갑니다.
제가 이스라엘을 여행할 때 이스라엘 사람들의 찬양하는 모습이 특이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찬양하면서 뛰고 춤을 춥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찬양할 때 모든 악기를 동원해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성전에 나와 춤을 추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들뜬 마음으로 성벽에 올라가서 춤추고 찬양하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우리는 점잖게 앉아 적당히 졸다가 예배가 끝나면 바로 집에 갑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설교가 조금 길면 은근히 화가 나기 시작합니다. 친구와 약속 시간에 늦을까봐 걱정스러워 말씀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삶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예배를 제대로 드릴 수 없고 얼굴에는 기쁨이 없고, 기쁨의 찬양도 흘러나오지 않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큰 기쁨의 축제입니까? 예배는 축제입니다. 장례식이 아닙니다. 예배는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하나님을 원 없이 마음껏 찬양하는 것입니다.
제가 일본에 살다보니까 한 가지 곤란한 것이 있는데, 소리가 밖으로 나가면 실례가 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뭐든지 조용하게 하는데, 신앙생활은 그렇게 못합니다. 정말 좋으면 새벽까지 찬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과 제사장들, 레위사람들,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사람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성전에 모여서 모든 악기를 동원해 춤을 추면서 큰 소리로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성벽에 올라가서 성벽을 돌았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 교회가 변해야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변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일은 주일날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토요일에 주일을 준비하면서 주일을 맞아야 합니다.

 

성전 봉헌식

 

성전 봉헌식은 어떻게 진행됐을까요?
27절을 읽겠습니다. “예루살렘 성벽 봉헌식을 거행하기 위해 레위 사람들을 그 모든 거처에서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심벌즈와 하프와 수금에 맞춰 감사의 찬송을 부르며 즐겁게 찬양하며 봉헌식을 거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첫 번째는 봉헌식을 거행하기 위해 레위사람들과 제사장들과 하나님이 섬기는 사람들, 특별히 레위사람들을 시골에서 모두 찾아왔습니다. 왜냐하면 앞에 레위사람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즐겁게 찬양하기 위해 심벌즈와 하프와 수금 등 자기가 연주할 수 있는 악기를 모두 가지고 나옵니다.
28, 29절을 읽겠습니다. “이에 노래하는 사람들이 예루살렘 외곽지역, 곧 느도바 사람들의 마을과 벧길갈과 게바와 아스마 들판에서 모여들었습니다. 노래하는 사람들은 예루살렘 외곽에 자기네 마을을 이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노래하는 사람들, 즉 종교적 제사장들이 가장 먼저 앞에 오는 것입니다. 종교적 제사장들이 없으면 축제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찬양하고 섬기고 봉사하는 사람들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종교적 제사장들이 영적인 방향을 제시해주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목회자가 타락하면 그 조직은 엉망이 돼버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바로 서면 그 조직은 영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30절을 읽겠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스스로 정결의식을 치른 뒤 백성들과 성문들과 성벽을 정결하게 했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이 스스로 정결의식을 치렀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가, 예배가 왜 자꾸 변하겠습니까? 화려하고 사람들 귀를 즐겁게 하고 사람들 눈을 즐겁게 하기 때문에 진정한 예배가 이뤄지지 않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란 성결함입니다. 거룩함입니다. 몸도 마음도 깨끗하고 생각도 깨끗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아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에 올 때까지 얼마나 잡다한 생각들을 많이 하고 옵니까. 교회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잡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눈에 초점이 없습니다. 방황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반대로 하나님께 집중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총기가 있습니다.

 

정결의식

 

축제를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정결의식이었습니다. 몸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고 생각을 깨끗이 한 것은 헌금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머니 뒤져서 돈이 있으면 내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 되기가 어렵습니다.
옛날 어른들은 헌금을 드리기 전에 돈을 다리미로 다릴 정도였습니다. 주일날 정성스럽게 준비한 헌금을 가슴에 품고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주일날 복장도 함부로 입고 오지 않았습니다. 슬리퍼를 신고 온다든가, 짧은 반바지를 입고 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예배드리기 전에 정성스럽게 준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대통령을 만난다면 그냥 가겠습니까?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을 만나려면 옷매무새도 다시 가다듬고 만반의 준비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자유롭게 만나기 때문에 너무 정성 없이 만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요즘 저희 부모님의 신앙을 생각해봅니다. 저희 가족은 시골에 살았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서울에 다녀오시려면 먼저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시고 출발하셨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다시 집으로 올 때에는 바로 집으로 오지 않고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한 후에 귀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참 이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정예배를 하루에 두 번씩 드렸습니다. 어렸을 때는 몰랐지만 성장해서 목사가 되고 보니까 우리 부모님이 신앙생활을 매우 잘하셨다고 느낍니다. 아버지는 하루에 다섯 시간씩 기도하셨습니다. 어머니가 밥을 차려놨는데 아버지의 기도가 쉽게 끝나지 않아 어머니가 화를 내는 해프닝도 많았습니다. 국을 수차례 데워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기도를 오래 하시는 것 때문에 시험도 많이 들고 화도 많이 내셨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와 마찬가지로 매일 혼자 예배를 드리셨습니다. 혼자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그게 형식일까요? 하나의 습관일까요? 아닙니다. 믿음이 없으면 못하는 일입니다. 지금도 그런 부모님의 신앙이 그립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모인 백성들

 

유다 지도자들을 성벽 꼭대기에 올라가 행진했습니다(31절). 학사 에스라가 이끄는 찬양대와 느헤미야가 이끄는 찬양대가 반씩 나눠서 행진하다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다 같이 만나게 됩니다.
36~39절을 읽겠습니다. “그 형제들, 곧 스마야, 아사렐, 밀랄래, 길랄래, 마애, 느다넬, 유다, 하나니가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악기를 들고 따라갔습니다. 학사 에스라가 그 행진에 앞장섰습니다. 그들은 ‘샘 문’에서 곧장 다윗 성의 계단을 올라 성벽으로 올라가다가 다윗의 집을 지나 동쪽 ‘물 문’에 이르렀습니다. 다른 찬양대는 반대 방향으로 행진했고 그 뒤는 내가 성벽 꼭대기에서 나머지 절반의 사람들과 함께 따라갔습니다. 그리하여 ‘풀무 탑’을 지나 넓은 성벽에 이르렀다가 ‘에브라임 문’, ‘옛 문’, ‘물고기 문’, ‘하나넬 탑’, ‘함메아 탑’을 지나 ‘양 문’까지 가서 ‘감옥 문’에서 멈춰 섰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하는 모습이 마음 가운데 그려집니다. 다윗이 쓰던 악기뿐만아니라 모든 악기를 들고 춤추고 노래하면서 성벽으로 올라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두 찬양대는 하나님의 집으로 모였고, 제사장들과 다른 사람들도 모두 따라 모였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40절).
42절을 읽겠습니다. “마아세야, 스마야, 엘르아살, 웃시, 여호하난, 말기야, 엘람, 에셀도 함께 있었습니다. 노래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선견자 예스라히야와 함께 큰 소리로 찬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소리로 찬양했습니다. 정말 좋아서 마음을 다해 큰소리로 찬양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도 조용히 골방에서 할 때도 있고 한꺼번에 모여서 통성으로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찬양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용히 혼자 부를 때도 있고 정말 좋으면 같이 찬양을 불러야할 때도 있습니다.
43절을 읽겠습니다. “또한 그들은 그날 희생제사를 크게 드리고 즐거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큰 기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내들과 어린아이들도 즐거워했습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에서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렸습니다.”
즐거워하는 소리, 기쁨의 소리, 외치는 소리가 성 밖까지 들렸습니다. 여인들과 어린아이들까지도 즐거워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

 

44절을 읽겠습니다. “그리고 그날 예물과 첫 수확물과 십일조를 모아 두는 창고를 맡을 사람들을 임명해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위해 율법에 정해진 몫을 여러 성들의 들에서 거둬들이도록 했습니다. 항상 준비하고 서 있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유다가 기뻐했기 때문입니다.”
기쁘고 좋으니까 자발적으로 첫 수확물과 십일조 등 각종 예물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예물을 모아 두는 창고를 맡을 사람을 임명하게 됩니다. 여러분, 자기가 좋으면 못하는 게 없습니다.
45절을 읽겠습니다. “노래하는 사람들과 성전 문지기들은 다윗과 그 아들 솔로몬의 명령에 따라 그들의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정결하게 하는 일을 수행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 가지 일을 수행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정결하게 하는 일입니다. 
제가 군대에서 일등병 시절에 한 병장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토요일만 되면 걸레를 들고 혼자 성전의 마루를 한 시간씩 닦았습니다. 제가 그 모습을 보고 참 감동했습니다. ‘이 사람 정말 하나님의 집을 사랑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러분, 교회 구석구석에 먼지가 없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너무 닦아서 먼지가 하나도 없을 정도가 돼야 합니다. 교회는 월급 받는 직원이 관리하는 곳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관리하는 곳입니다. 쓰레기도 성도들이 줍고 청소도 성도들이 하다보면 내 마음이 정결해지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몸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주일학교 교사로 자원해서 하십시오. 왜 못할까요? 주일날 딱 두 시간 예배 드리고 다른 데 갈 생각만 하기 때문입니다.
찬양도, 사역도, 봉사도 모두 하나님의 일입니다. 뭔가 하나님의 집을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을 쌓고 나서 성전 안이 너무 더러운 것을 알고 자진해서 들어가 살았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깨끗하게 청소했습니다. 교회가 그런 곳이 돼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에 대한 애정

 

우리 교회에 예전에 환경부 차관을 지내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차관이 되기 전에 매일 새벽예배를 드렸는데 새벽기도가 끝나자마자 봉투와 집게를 들고 교회 구석구석을 다니며 쓰레기를 치웠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제가 왜 그러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분은 “그냥 좀 하고 싶어서 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 달 지났는데 신문에 그분이 환경부차관에 임명된 것을 봤습니다.
또 우리 교회에 새벽예배가 끝나자마자 식당으로 내려가서 봉사하는 한 가족이 있습니다. 아이들까지 모두 가서 배식을 돕고 뒷정리를 돕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 가족은 그렇게 봉사합니다. 저는 그렇게 교회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처음 지을 때는 좋았는데 화장실을 오래 사용하다 보니 냄새가 난답니다. 그런데 최근에 한 성도가 자원해서 고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을 새 타일로 바꾸고 깨끗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대한 애정은 곧 하나님에 대한 애정입니다. 성도 모두 청소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에는 거미줄이 없어야 합니다. 교회 구석구석까지 닦아야 합니다. 그게 신앙고백입니다. 거기에 기쁨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축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을 재건하고 축제를 벌였습니다. 모든 악기를 들고 춤을 추면서 성벽을 돌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도 이러한 축제를 주십시오. 큰소리로 찬양하고 큰소리로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그런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정리 임재금 기자 ljg14@onnu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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