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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설교모음

설교 전병욱목사님/삼일교회/빌 1:12-18/기상천외한 하나님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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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 2009년5월24일/주일낮2부/빌 1:12-18/기상천외한 하나님의 전략(32:32)

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빌립보서 1장 12절~18절 ]

이 땅에서 고수로 살아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하다. 인도하심을 받아야 탁월하고 우월한 삶을 살 수 있다. 

첫째, 전화위복의 삶
사도바울의 시종일관된 소망은 로마에 가는 것이었다.

21.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사도행전 19장 21절]

로마가 당시 세계의 수도였기 때문에 로마를 복음화 시키면 세계를 복음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이일을 호응해주시고 약속을 보증해 주셨다.

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23장 11절]

사도바울은 될 수 있으면 감옥에 갇히기를 원하지 않았다. 회당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은 2년이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하나님 일을 열심히 하는데 왜 하나님은 감옥에 보냈을까? 충성하고 헌신하기로 했는데 길이 열리지 않고 내 생각에 길이 막히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런데 다 지나고 보니까 막힌 것 같은 그 길이 열린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 사도바울의 안전의 문제 : 사도바울을 죽이려고 한 사람이 40명이 넘었다. 죄수의 몸으로 끌려갔기에 감옥이 그를 보호해준 측면이 있어 안전하게 로마에 갈 수 있었다.
2. 사도바울의 여비 문제 : 로마에 가기 위한 여비를 마련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었으나, 죄수로 끌려가서 로마 국비로 지불해 가면서 로마에 도착하게 되었다.
3. 사도바울의 전도 문제 : 감옥에 있는 동안 하루 4번의 교대시간의 감시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왕궁안에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다.
죄수로써 로마에 끌려가고 죄수로 갇혀 있는 것으로 인해 사도바울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셨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장 28절]

아틀란타에 아시는 정직하게 사시는 분이 계십니다. 최근에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남편이 돌아가시고 집을 산지 20년 가까이 되자 천장에 물이 새기 시작하여 고치려고 하자 돈도 많이 들어 설상가상인 상황이었다. 거기에 집사님 집 주변의 20채 집만 우박이 떨어지기 시작하여 천장이 다 뚫렸다. 그런데 그 20채 집을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급해줘서 지붕채 고쳐줬다. 우리 인생도 이런일이 많이 벌어진다. 우박맞는 일이 많이 벌어진다. 그것은 우리의 물 새는 집을 깨끗이 고치기 위한 것이다. 사업상의 어려움, 진학문제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길을 막는 것 같지만 이런 원통함에는 하나님의 전략이 숨겨져 있다.

KTX를 타고 부산까지 가다보면 터널을 너무 많이 지나가 답답하고 어둡다. 그 이유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터널안에 들어갔을 때 어둡고 답답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지름길이라고 생각하신다. 답답하라고 뚫는 것이 아니라 빨리가라고 터널을 뚫어주시는 것이다. 삶에서 터널의 은혜를 체험하는 믿음의 종들이 되길 바랍니다.

둘째. 은혜의 삶
사도바울은 중간의 방해 난관이 있더라도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끝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마지막에는 내가 최종적으로 승리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라는 것이 있어서 과정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어떤 일을 맡기면 과정에서 흔들리는 사람이 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 요셉처럼 우리도 인생의 구덩이에 빠질 때가 있다. 구덩이에서 안 죽습니다. 팔려갑니다. 끝나나요?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십니다. 종이되었습니다 끝나나요? 감옥에 갔습니다 .끝나나요? 하나님의 꿈에 대한 신뢰가 과정 가운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 가운데 끝에 대한 신뢰가 없는 사람은 구덩이에 빠지면 미쳐버린다. 자기힘으로
해보려고 아둥바둥 안되니까. 마음에 두려움과 의심이 있기에 머리가 돈다. 꿈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흔들리지 않는다. 요셉도 마지막에 하나님이 일으켜 주셨다. 그것이 은혜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우리 크리스천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행위 중독자이다. 행위의 함정은 내가 잘 살려고 하는 것이다. 내가 넘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안 넘어지려고 하면 넘어진다. 안 넘어지려고 하는 사람일수록 넘어진다. 은혜안에 사는 사람의 특징은 넘어져도 괜찮다.이다. 축구시합도 3:0으로 이기고 있으면 오히려 6:0으로 더 이긴다. 신뢰에 대한 확신, 은혜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거 성공하지 못하면 역전패 당할 수 있어. 이런 불안한 마음으로 한다면 넘어질 가능성이 크다. 행위를 의존하는 사람이 더 잘 살것 같지만 행위로 넘어진다. 그러나 은혜를 붙드는 사람은 오히려 행위에 있어서도 덜 넘어진다.
2차 대전 끝난 후 레지스탕스 대원중의 한사람인인 스티플 콥스스키의 이야기.
폴란드 자체에 있는 레지스탕스 상당수의 사람들이 나치 압잡이로 몰리게 되었다. 스티플 콥스스키외의 16명이 재판을 받기위해 끌려갔다. 스스로 자백을 만들어내도록 고문을 했지만 스티플 콥스스키는 끝까지 견뎌냈다. 그래서 폴란드로 무사히 돌아오게 되었다. 끝까지 견뎌낸 이유를 묻자 " 그들이 아무리 고문을 해도 나는 정당화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라고 했다고 한다. 고문하는 사람이 " 더러운 사람이지"라고 하면 "예 더러운 사람입니다." "음란한 사람이지?"라고 하면 "예 음란한 사람입니다." 등 어떤 정죄를 해도 다 맞다고 인정하고 그 보다 더 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인정했다고 한다. 내 모든 죄는 예수님이 다 짊어 지셨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자신이 한심해보일때 절망감을 느낄 때 "내가 책임지겠다"라고 자기 의를 세우기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다. 아무리 깨끗한 사람도 먼지 없는 사람이 없다. 자기 의는 누더기 같은 것이다. 언젠가는 무너지게 되어 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로마서 3장 10절]
우리도 정죄하면 죄가 나온다. 아니라고 버티면 언젠가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 내 인생 내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압박감과 책임감이 일어났을 때 그리스도의 험한 십자가를 붙들어야 한다. 그 보다 더한 죄인입니다. 내 모든 죄를 예수님이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정당화 시켜주는 것이지 내가 정당화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회복의 능력이 있다. 은혜안에 살아가는 부족한 죄인의 모습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인도하심으로 은혜를 붙드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지을 때 수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밑에 보다가 떨어져 죽은 사람도 11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때 세계최초로 안전망을 만들었다. 떨어져도 되죠? 떨어져도 그물에 걸려 죽지 않게. 떨어져선 안될 때는 떨어져서 11명이 죽었지만 안전망 깔고 난 후에는 한명도 안 죽었다고 한다.

떨어져도 되는 삶은 오히려 안 떨어진다. 은혜안에 사는 사람이란 떨어져도 되는 삶이다. 주님이 우리 붙들어 주신다. 근데 묘하게 안 떨어진다. 하나님앞에 모든것을 맡깁니다. 하고 넘어져도 주님이 다시 건져 주신다.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된다. 넘어져도 되는 삶.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특징은 겉으로는 어두컴컴해도 전화위복의 삶이 되고 넘어지면 안되는 인생이 아니라 넘어져도 되는 인생으로 오히려 넘어지지 않는 역설의 능력을 갖는 믿음의 종이 된다.
위 글은 설교내용을 받아 적은 노트로 오타 또는 말의 어긋남이 있을 수 있으며 저작권은 각 교회 및 사이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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