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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세상속에 살다

빛과소금 6월호, 아나운서 김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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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소금 6월호의 Special Interview에 소개된 김재원 아나운서 편을 감동있게 읽었습니다. Special Interview는 세상속에서 살고 있는 크리스천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삶을 조명하는 시간입니다. (제 블로그 '크리스천, 세상 속에서 살다'와도 비슷하죠?ㅋ) 유일무이한 기독교 잡지인 빛과소금은 1984년에 출간되어 한번의 폐간 위기를 겪었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고마운 기독교계의 잡지입니다.

항상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보아왔던 김재원 아나운서에 대한 제 느낌은, 부드러운 인상과 외모 그리고 큰 키로 많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이다. 정도였는데요. 잡지를 보며 두가지 사실에 놀랐습니다.
첫째는, 그가 크리스천이라는 사실
둘째는, 그가 유부남이고 고등학생 아들이 있다는 사실
(1967년생이니 고등학생일 수밖에 없는데, 너무 동안이여서 그 정도 연세?인지 몰랐네요.)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도전이 될 만한 내용들이 있어서 간단하게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Q. <아침마당> 출연자 중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면요?
A. <코리아 갓 탤런트>에 출연했던 최성봉 씨에게는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용서를 구했고, 저를 받아줄 수 있으면 안아달라고 했더니 흔쾌히 안아주었어요. 그 친구가 어른에 대한 증오를 빨리 내려놨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고, 이 시대의 어린이를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Q. 특별한 계기로 아나운서가 되었다고 들었어요
A. 제 어릴 적 꿈이 아나운서였어요. 커가면서 꿈을 놓았는데, 하나님은 제 꿈을 놓지 않으셨던 거죠. 저마저도 잊어버린 꿈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저를 빚어 가신 거예요. 돌이켜 생각하면, 교회에서 중·고등부 시절, 수많은 학생들 앞에서 3년 동안 마이크를 잡고 광고를 했던 일, 대학생 때 맹아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며 표현력 훈련을 했던 일, 매년 성경 통독 사경회에서 통독사로서 성경을 읽으며 발음 훈련을 했던 일, 선교 단체에서 어르신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마음을 읽는 훈련을 했던 일 등이 모두 하나님께서 저를 아나운서로 빚어 가기 위한 준비 과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사업이 망하고, 생활고를 통해서 하나님은 저를 녹이고 빚어 가신 거라고 생각해요.

Q. 어떤 가정에서 성장했는지 궁금해요. 어릴 적 얘기를 들려주세요.
A. 할아버지 때부터 하나님을 믿었고 저희 아들까지 4대째 이어가고 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불교 신자였기 때문에 아버지가 신앙을 잃어버리셨어요. 결혼 후 두 분은 교회에 나가지 않았는데 조부모께서 성경책에 어머니 사진을 넣고 다니며 기도를 하셨대요.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가정환경 조사서에 불교라고 쓰기 싫어서, 어머니 아버지를 졸랐어요. 저를 핑계 삼아서 동네 목사님을 불러서 예배를 드렸고, 저는 친구에게 ‘나 좀 교회에 데려가 달라’고 해서 1977년 5월 15일부터 이촌동에 있는 한강교회에 나가게 되었죠.
어머니 아버지도 저보다 2주 먼저 교회에 나가셨어요. 어머니는 뒤늦게 하나님을 만난 게 무색할 만큼 신앙이 뜨거우셨어요. 바로 세례 받으시고 집사 되시고.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어머니께서 자주 아파트 창문을 열고 “예수님 사랑해요!” 하고 외치곤 하셨어요. 어머니와 함께 버스를 타면 옆에 앉은 분에게 꼭 전도를 하셔서 무척 창피했던 기억도 있어요. 어머니는 하나님을 만나고 2년 남짓 사셨는데 뜨거운 예수쟁이로 살다가 가셨어요. 어머니가 간암으로 5년간 투병 생활을 하셨는데 그때 온 교회 성도들이 기도해 주고, 집에 와서 예배드리고 했던 기억이 나요.

Q. 믿음 생활을 위해 부부가 특별히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A. 제가 먼저 유학을 가고 1년 정도 떨어져 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 매일 큐티한 내용을 일기로 써서 우편으로 주고받았어요. 그 편지를 아직도 보관하고 있어요. 다시 보면 조금 낯간지럽기도 하지만, 당시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고 저희가 돈독한 신앙의 토대 위에서 교제를 했다는 것이 뿌듯하게 느껴져요. 올해로 결혼한 지 19년째인데 아직도 그 느낌으로 살아요. 물론 편지를 주고받지는 않지만 당시의 느낌대로 여전히 큐티를 나누고 있어요. 한 공간에서 같은 말씀으로 큐티를 나누다 보면 서로가 하나로 묶여 있다는 동질감이 느껴져요.

Q. 겉으로는 청년처럼 보이는데, 고등학생 아들이 있어요. 아들은 엄마 아빠의 신실함을 잘 이어받고 있나요?
A. 아침에 보통 큐티를 하는데 학교에 늦을 것 같은데도 붙들고 하는 걸 보고 있자면, 혼낼 수도 없고 빨리 가라고 할 수도 없고 참 난감하죠.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진짜 신앙은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추출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가 충분히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아이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발언과 행동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저희 집 아이가 고1 때까지 학원을 안 다니고 자기주도 학습을 했어요. 한창 좋을 나이에 학원에 파묻히는 건 청소년 학대라고 하기에 학원을 안 보냈죠. 학원비에 해당하는 돈을 아이 이름으로 따로 모아 두었어요. 나중에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여행을 가든지 필요한 곳에 쓰라고 모아 두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캄보디아 선교사님으로부터 캄보디아에 학교를 세우는 데 1천만원이 든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어요. 그 이야기를 듣자 아이가 자기가 모든 돈을 쾌척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돈으로 캄보디아 시골 마을에 평일엔 학교, 주일엔 교회로 쓰이는 건물 하나를 세웠어요.

Q. 싫은 사람과는 어떻게 대화해야 할까요?
A. 일상생활에서 남의 흉을 본다는 것은 좋지 않은 파급 효과가 있어요. 내 마음도 편치 않고, 불필요한 말이 번져나가면 그 사람과의 관계도 불편해질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누군가 나를 화나게 하면 퇴근길에 그 사람에게 말을 해요. 물론 혼자서, 마포대교 위에서요. 때로 정말 화가 날 경우에는 그 사람에게 욕을 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하고 나면 분노가 가라앉아요. 이 방법은 어느 신부님을 통해서 배운 건데, 저는 그것을 '분노의 용변'이라고 불러요.

Q. 어떤 방송인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A. 저는 중개인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목회자가 성도와 하나님을 연결하는 중개 역할을 하는 것처럼, 저는 출연자와 시청자를 연결하는 중개인으로서 또 다른 제사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출연자의 이야기를 잘 끌어내서 그 이야기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시청자가 출연자에게 박수를 보내도록 들러리의 역할을 잘 감당했으면 좋겠어요. 간증을 하는 자리에서도 박수를 받는게 어색해요. 이 박수는 하나님의 것이며, 제 삶을 돌봐주신 예수님의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박수를 취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늘 노력하고 있어요.



김재원아나운서 부인도 같은 선교단체에서 함께 사역했던 친구였다고 하는데요. 복음성가를 함께 따라 부르는 모습에서 같은 동질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부부가 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으로 먼저 프로포즈 했다고 하네요.


간증자료가 많지 않은데요. 1분 30초짜리 간증 동영상이 있어서 소개해드려요.

방송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연예인과 같이 화려한 삶을 꿈꾸기 마련인데요. 김재원 아나운서는 본인의 역할이 제사장, 들러리를 할 뿐이라고 고백하네요. 간증하는 자리에서도 박수받는 것이 어색하다는 그를 통해 하나님의 귀한 열매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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